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큐 전철 (문단 편집) == 역사 == 1907년 미노오아리마 전기궤도(箕面有馬電気軌道)라는 이름으로 설립[* 저 한자(箕面)를 미노/오로 끊어 읽는지라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의 장음에 해당하지 않는다. み는 箕, の는 표기에 반영되지 않았으나 소유격 조사 の로 추정, お는 面으로 표기된다. 하지만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일단 한큐에서는 Minoh라고 쓰고 있는데, [[유희왕]]을 Yu-Gi-Oh라고 하듯 Oh가 장음 오를 표기하는 데 쓰이는 관습적 표기 중 하나이다.], 1910년 현재의 타카라즈카 본선 구간을 개통하면서 철도 영업을 시작했다. 한큐의 뿌리 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타카라즈카선은 한큐의 밥줄과도 같은 노선으로 이 노선을 만들어 놓고 타카라즈카에 택지개발을 한다던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만든다든가 해서 일부러 없던 수요를 만들기도 했으며, 심지어 당시에 [[공기수송(교통)|공기수송]] 비슷한 비아냥을 듣기까지 했다. 열차를 타게 만들기 위해서 기차역 근처에 온갖 것들을 만들어 놓는 기행을 벌였다. 백화점도 만들고 극장도 만들고 역 주변의 도시 개발도 해놓아 버렸다. 물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기행이 대박을 쳐서 다른 도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옆나라]]에서도 [[다카라즈카 가극단]] 등 위락 시설을 즐기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렇게 도시 근교에 철도부터 부설하고 역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만들어 부동산 가치를 올리고 철도의 수요도 창출하는 방법은 한큐 전철의 창시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전 일본에서 처음으로 창안해낸 것으로, '''이후 일본 사철들의 운영방침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된다.'''[* 여기에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은 인물이 당시 [[도큐]]의 회장이었던 고토 케이타(五島慶太)로, 한큐의 연선 개발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여 일개 노면전차 회사에 불과했던 [[도큐]]를 수도권 제일의 사철회사로 키워냈다.] 가히 사철들의 선구자이심에 틀림없다. 이후 그는 한큐 우메다역에 [[백화점]]([[한큐백화점]])을 세움으로써 역시 일본 최초로 상업시설과 연계된 철도역을 만드는 데 이른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역]], [[청량리역]] 등 큰 역에는 반드시 상업시설과 연계되어 있다.] 이게 굉장한 상술인 게 열차는 배차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역에다 상업시설을 설치해 놓으면 승객들은 배차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쇼핑을 하고 물건도 구매해서 수익 속의 수익을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자체적으로 철도를 부설할 여력이 있었던 당시 국가들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도 이러한 방식을 아주 고려해 보지 않은 건 아니라서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철도를 부설할 여력이 생긴 20세기 말엽에 철도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를 키워보려고 한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들 신도시의 규모에 비해 고급 철도 인프라는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급행운전 등 화려한 운용을 보여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분당의 경우는 급행노선격인 [[신분당선]]이 개통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존 [[분당선]] 구간인 죽전~왕십리 및 일산선 구간의 급행운영을 국토부에서 검토하고 있다. 일산도 용산역 이동 구간의 선로포화가 걸림돌이긴 해도 [[경의선]]이 선형이 우수하고, 복복선 노반으로 준비되어 있어 급행운행에 유리하다. 그리고 급행노선으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A노선]]이 계획되고 있다. 사실 이런 일본식 철도개발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한국에도 있다. 바로 [[경인선]]. 실제로 부천역 앞의 방사형 택지는 1930년대 중반 일제 당국에 의해 '''전원도시'''로 계획된 곳이다.] 이후 오사카-고베 간 노선 확장 계획을 세우며 1918년 사명을 한신 급행전철(阪神急行電鉄)로 변경, 한큐라는 약칭을 이 시기부터 사용하게 된다. 1920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고베 본선 구간이 개통된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에서 같은 구간에서의 경쟁자의 출연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한신 전기철도]]는 한큐의 고베 진출을 저지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치명적인 판단 미스로 인해 결국 경쟁자의 등장을 허용하게 되고 이후 오랜 기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한신은 결국 그 경쟁사라는 놈에게 따먹힌다...-- 1942년 전시기업통합정책에 의해 [[케이한 전기철도]]와 합병하여 케이한신 급행전철(京阪神急行電鉄)이 설립되지만 종전 후인 1949년 다시 갈라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합병 이전 케이한이 보유하고 있었던 신케이한선이 한큐 측에 남는 것으로 결정.[* 이 건에 대해서는 분리 당시 케이한 측에 비해 다수의 이사진이 포진했던 한큐 측이 숫자로 밀어부쳐 강탈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동시에 신케이한선의 노선명이 교토 본선으로 변경된다. 분리 이후에도 한큐 측은 사명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지만 1973년 한큐 전철(阪急電鉄)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불쌍한 케이한~~ 2차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 들어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각 대도시권에 공공주도 신도시를 건설하게 되는데, 오사카부는 한큐의 연선 개발 방식에 영감을 얻어 한큐와 함께 [[센리 뉴타운]]을 개발했고 [[한큐 센리선|센리선]]을 센리 뉴타운까지 연장하고 오사카부와 함께 제3섹터 계열사인 [[키타오사카 급행전철]]을 설립해 한큐의 연선 개발 능력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도쿄도가 [[오다큐 전철]]과 [[케이오 전철]]을 끌어들여 어설프게 따라하려 했다가 완전히 망해버린 [[타마 뉴타운]]과는 달리, 센리 뉴타운은 압도적인 도심 접근성이 바탕이 되어 지금도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잘 나가는듯 싶더니, 1989년에 기존 한큐 전철은 한큐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변환하여 철도와 부동산을 포함한 6개의 사업을 자회사화한다. 따라서 현재의 한큐 전철은 한큐한신홀딩스가 100%인 자회사 형태다. 이후 사업을 확장하면서 자회사이자 영화사인 '''[[도호]] 주식회사'''를 세웠고[* '''짱구, 코난,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를 계속 수입하는 회사다.'''], 2006년에는 같은 16대 사철 중 하나이자 불구대천의 원쑤이며 숙명의 라이벌 포지션이었던 [[한신 전기철도]](+한신백화점+[[한신 타이거스]])를 먹고(!) 현재의 [[한큐한신토호그룹]]을 형성하게 된다.~~이쯤되면 재벌이다.(...)~~ 2013년 12월 21일 몇몇 역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역번호도 도입하였다. [[파일:Keihanshin Kyuko Dentetsu-logo.png|width=100]] 참고로 한큐의 현재 마크는 3번째로 바뀐 것이다. 이 중 초창기 케이한신 급행전철 시절에 쓰인 초대 마크는 오사카+교토+고베의 시 문장을 적절하게 겹쳐서 조합한 것으로, 오사카와 고베의 문장은 아예 있는 그대로 채용하였고, 교토의 문장은 그 형태만을 따와서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만든 것이다. 2대째 마크는 알파벳 H자를 형상화한 것이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3대째 마크이다. 2020년에는 악재를 겪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매출 감소는 물론, [[호쿠신 급행전철]] 청산 이후 그 회사의 막대한 부채[* 대략 200억엔 이상. 원래는 400억엔 가량이었는데 200억엔 가량은 고베시가 선로와 차량 인수에 대한 비용으로 지불했기 때문이다.]를 전부 떠안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